실명기부와 익명기부에 대한 단상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펀드레이저 이민구

 

 

 

"당신이 고액기부자라면 실명으로 기부하겠습니까?

익명으로 기부하겠습니까?"

 

 

 

실명기부의 나비효과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얼마 전 공교육 개혁을 위해 익명으로 1억 달러를 기부하려 하자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이름을 말하지 않으려 하죠? 자신을 밝혀야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결국 그녀는 저커버그가 실명으로 기부하도록 설득했다고 합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 멀린다 게이츠,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세계 부호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재산 절반 기부운동(giving pledge)'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고 기부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기부운동의

핵심은 돈은 가질 만큼 가졌으니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지도층의 유명인이 먼저

기부에 모범을 보이자'는 것에 있습니다.

모범적인 기부사례는 시민 다수의 소액기부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빌게이츠와 워런버핏 역시 이러한 '나눔의 나비효과'를 믿고 기부운동에 제2의 인생을 투자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근 사랑의 열매가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유명인의 기부 활동이 일반시민의

기부동기부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을 무려 80%를 넘었습니다. 이 결과를 보더라도 실명기부를 통한

모범적 기부사례는 나눔문화 발전과 확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익명기부의 미덕

 

 필자는 사랑의 열매에서 1억원 이상의 개인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운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회지도층의 실명기부를 이끌어내어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모임은 현재 560명의

실명 고액기부자의 사례를 발굴하여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그 중 익명기부자는 80명입니다. 480명의 실명 기부자가

모두 처음부터 실명 기부를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 저크버그를 실명기부로 이끈 오프라 윈프리처럼 오랜 설득의

과정 끝에 실명공개를 받아 내는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모임을 운영하며 이 설득의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발견해 냈습니다. 실명기부의 중요성을 기부자에게 말씀드리지만 익명기부가 가진 '고유한

나눔의 미덕'온전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익명기부가 나눔의 미덕이다'라는 말은 아닙니다.

 

 '익명기부가 더 아름답다'란 말 역시 아닙니다. 기부자는 살아온 인생, 현재의 환경, 기부 여건과 동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기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실명기부''익명기부' 역시 기부자의 성향에 따라 결정이 되기 때문에

어떤 기부이든지 그 행위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기부문화 학자인 Prince&File (The Seven Face of Philanthropy)란 저서를 통해 기부자는 크게 7가지의

기부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각자가 가진 기부동기에 따라 실명기부 또는 익명기부와 같은 고유의 성향을 보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7가지 성향 중 가장 많이 부류를 차지하는 '공동체형 기부자', '투자자형 기부자'들은 기부를 통해

자기만족도 느끼고 비즈니스상의 이익도 함께 취할 수 있길 기대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의 기부자는 다시 말해 실명의 기부를 선호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부류들은 '종교신자형 기부자', '이타주의자형 기부자'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성향의 기부자는

자신의 신념과 이타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익명의 기부를 많이 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실명의 기부가

타인의 기부동기를 유발한다는 긍정적 나비효과도 중요하지만 익명의 기부를 통해 조용히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신념과 이타심'을 발현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조화로운 나눔을 위하여

 

가을입니다. 들녘에는 황금빛 벼들이 고개를 숙입니다. 문득 황금들판을 바라보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밥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밥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제공하여 신진대사의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나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눔은 우리 사회에 건강한 에너지를 제공하여 더 아름다운 공동체 사회를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건강한 밥이 되어 건강한 몸을 만들어주는 한 톨의 쌀이 실명기부자와 같다면

그 한 톨의 쌀이 잘 익도록 도와주는 바람과 비와 햇살은 익명의 기부자와 같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임을 우리가 안다면 쌀 한 톨이 더 중요한지, 아니면 바람 한 점과 햇살 한줌이 더 중요한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조화를 믿듯이 실명기부와 익명기부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나눔의 하모니'를 우리 사회구성원들은

그대로 지지하고 즐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하모니를 지지하며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대해서는

기부현장의 실무자로서 많은 안타까움이 남아 있습니다.

 

배우 문근영씨의 기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초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이 고액의

실명기부를 밝혔을 때 100통 이상의 기부요청 전화를 받았다는 토로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현상은

아닌지 반문해봐야 할 것입니다. 소액이든 고액이든, 물질이든 노력이든, 나눈다는 기부행위 자체에

대한 고유한 존엄성과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우리 스스로 깊이 반성하며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톨의 쌀을 위해서 여든 여덟 번의 자연과 인간의 정성스런 손길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든 자신의 재화와 노력은 소중하며,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나눔의 용기는

박수 받아야 마땅합니다. 한 톨의 쌀을 위하듯 나눔을 위해 자신의 노력과 용기를 아끼지 않는 이 땅의

기부자를 위해 어떠한 시각과 자세로 그들의 나눔을 받아들여야 할지는 온전히

우리 사회 구성원, 바로 나 자신의 몫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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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울특별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